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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카페에서 부치는 '시골편지'
무쇠솥에 커피콩 볶다 도 트겠네! 본문
산마을에 조그만 카페를 연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6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처음 문을 열었을 땐 “거기서 무슨 카페가 되겠냐”며 걱정해주는 이들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코로나 시기도 무사히 넘기고 지금은 지역에서 제법 유명한 카페가 됐습니다.
초라하고 볼품없는 외관, 촌스럽고 투박한 인테리어, 직접 만드는 소박한 메뉴들. 그런 것들이 좋아 일부러 찾아오는 손님들도 많습니다.
시작할 때 도시의 세련된 카페들과 다르게 하고 싶어, 공사하다 남은 나무판에 손글씨를 써 벽을 장식했습니다. 돌에 페인트칠을 해 시를 썼습니다. 마당에서 직접 기른 야채와 마을 사람들이 농사 지은 것들로 음료를 만들고, 커피도 직접 볶아 핸드드립으로 내렸습니다. 물론, 지금은 손님이 많아져 커피머신을 쓰지만 처음엔 핸드드립만 고집했습니다.
핸드드립용 커피콩은 무쇠솥에 볶았습니다. 시골 카페에는 그게 어울릴 것 같아, 커피에 대한 지식도 없이 그렇게 시작했습니다. 지금도 핸드드립은 무쇠솥에 직접 볶은 커피콩을 사용합니다. 동네에서 만드는 누룽지를 함께 넣은 '가마솥누룽지커피'도 개발해 메뉴에 추가했습니다.
무쇠솥에 커피를 볶는 일이 처음엔 쉽지 않았습니다. 불 위에 무쇠솥을 올려 달구고, 원두를 넣어 나무주걱으로 타지 않게 쉼 없이 저어야 합니다. 불 조절을 못해 태워 먹기도 하고, 덜 볶기도 했습니다. 게다가 볶는 동안 나오는 가스와 연기는 머리를 어지럽게 할 정도로 심했습니다.
그래서 실내보다는 바비큐하듯 야외에서 주로 볶았는데 겨울엔 바람 불고 기온이 낮아 시간이 더 오래 걸렸습니다. 몇 년 하다 보니 이제는 방법을 알고 기술도 늘어 손에 익었습니다.
불빛이 희미한 마당에서도, 잠깐씩 딴짓하면서도 제법 잘 볶아냅니다. 그래도 기계처럼 고르게 볶을 수는 없습니다.
불을 지피고 무쇠솥을 달궈 1㎏ 원두를 볶으면 1시간 정도 걸립니다. 손은 연신 주걱을 돌리며 눈으로 콩의 상태를 살피고 코로는 향을 맡습니다. 귀로는 소리를 듣습니다. 그게 모두 커피가 어느 정도 잘 볶아졌는지를 알아내는 방법입니다. 커피 맛을 내려면 적당한 타이밍에 불을 빼야 하기 때문에 콩볶는 소리가 요란해지면 예민해 집니다. 그렇게 집중하다 보면 딴 생각을 못 합니다.
무쇠솥에서 커피콩을 볶는 것이 나에게는 화두를 들고 명상하는 시간입니다. 스님들은 해탈삼매를 위해 화두를 붙들고, 그 걸 놓치지 않으려 면벽수행을 합니다. 화두는 그 자체를 깨닫는 게 아닙니다. 수행 중 잡생각을 끊고 마음을 하나에 집중하게 만드는 방편입니다. 그렇게 하나의 생각에 매진하다 보면, 결국 그 생각조차 사라진 자리가 삼매입니다.
사람들은 순간에도 하도 많은 생각을 일으키다보니 복잡하게 삽니다. 그 많은 생각들을 한 방에 끊어낼 수 없습니다. 그 많은 잡생각을 못하도록 하기 위해, 하나의 생각으로 집중하도록 하기 위해 화두를 들게 하는 겁니다. 화두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고 그렇게 집중한 다음의 세상으로 건너가 해탈을 하라는 겁니다.
삶이 힘들 때면 화두도 잡아 보고, 명상도 따라 해 봤지만 결국 다 ‘말짱 도루묵’이었습니다. 스님께 물어도, 목사님께 물어도 속 시원한 답은 없었습니다. 다 내 것이지 누가 짊어질 수 있는 건 아니니까요.
젊었을 때 절에 들어가 살아볼까 하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습니다.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니고, 그냥 좋아 보이고 멋져 보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못 했습니다. 믿음이 부족했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제대로 믿고 끝까지 따라갔더라면 무언가 보였을지도 모릅니다.
여전히 ‘탐진치’에 사로잡혀 ‘아상’ 하나 내려놓지 못하고 이리저리 헤매며 살고 있습니다. 하산 하기는 글렀습니다.
그렇게 커피를 볶으며 몰입하는 시간이 쌓이다 보니, 문득 "화두도 명상도 별 게 아니네" 하는 순간이 있었습니다.
화두는 하나의 생각에 집중하기 위한 도구입니다. 그렇다면 그 도구는 우리 주변에 수도없이 많습니다. 무엇엔가 집중하고 빠져들면 그게 화두고 그걸 똑바로 바라보는 것이 바로 명상인데 억지로 폼나는 무엇인가를 찾으려 했습니다.
천리안을 얻어 먼 곳까지 훤히 내다보고, 신통을 얻어 몸이 붕붕 떠다니는 도사의 경지에 이르길 바라지도 않았고, 그저 마음이 맑아지고 삶을 덜 복잡하게 사는 게 목적이었는데 말입니다. 일반 중생들이야 복잡하고 심란한 마음이 잔잔해지고, 정신이 맑아져 제 정신으로 살면 충분합니다.
커피를 볶고, 대문에 페인트칠을 하고, 벤치에 앉아 누군가를 기다리는 바로 그 순간이 화두고 그 행위가 명상입니다. 샤워 중에도, 잠들기 전 침대에 누워서도, 하얀 종이에 손글씨를 쓰는 그 순간도 명상입니다. 지금 하고 있는 그 생각에 집중할 수 있다면 말입니다. 하지만 그게 쉽지 않습니다. 집중의 순간에도 생각들이 수시로 바뀝니다. 생각 속에서 또 생각이 일어납니다.
지금 이 순간을 집중해 살 수 있다면 하루하루 사는 것이 화두고 명상입니다. 그 모두가 면벽수행입니다. 깨달음으로 가는 길입니다.나에겐 커피콩 볶는 것이 화두고 그 시간이 명상이고 면벽수행입니다. 이러다 도가 터 하산할 수도 있겠네요.
시골땅 시골집 시골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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