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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카페에서 부치는 '시골편지'
그리운 '상량문' 본문

“집 나와라! 뚝딱!”
요즘 집 짓는 풍경을 보면 마치 마법과 같습니다. 일하는 사람도 보이지 않는데 며칠 사이에 뼈대가 올라가고 지붕이 덮이고 어느새 예쁜 집 한 채가 생깁니다.
더 놀라운 건 ‘배달시키는 집'도 있다는 겁니다. 중국집 짜장면처럼 집을 주문하면 트럭에 싣고 와 “집 시키신 분!”을 찾습니다. 주인이 확인되면 집을 마당에 내려놓고 갑니다. 순식간에 집 한 채가 완성됩니다.
오랜 시간과 정성을 들여 짓던 예전 모습과는 너무 다른 풍경입니다.
누구에게나 집 한 채 짓는 것은 평생의 업입니다. 단순히 돈만으로는 지을 수 없고, 정성을 쏟아 기도하는 마음으로 지어야 합니다.
예전에는 더욱 그랬습니다. 집 짓기를 할 때는 천지신명께 고하며 시작했습니다. 집이 지어지는 과정 하나하나가 가족들의 정성이었고 고이고이 기억할 기념일이었습니다.
특히 집의 중심을 이루는 들보를 올리는 상량 날에는 집 짓는 의미를 담은 상량문을 써 들보 위에 소중히 간직했습니다. 잔치를 열어 내 집을 지으며 땀 흘리는 이들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했고, 함께 살아갈 이웃들에게는 소음과 불편을 끼쳐 죄송하다는 마음을 담았습니다.
이를 상량식이라 했습니다. 집 짓는 과정에서 가장 의미 있고 큰 행사였습니다.

요즘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공법이 발전해 상량이 필요 없는 구조의 집짓기가 많아진 이유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시간과 비용을 낭비하는 비효율적 행사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바쁜 공사 일정 속에서 볼 때 거추장스러운 행위에 불과합니다.
상량은 집을 지을 때 기둥을 세우고 대들보를 얹은 다음, 그 위에 마룻대를 올리는 것을 말합니다. 마룻대는 건물 중심에 자리잡은 주요부라 최고급 자재를 사용하고 정성을 들입니다.
상량할 때는 집 짓는 의미와 건물의 안전, 사는 사람들의 행복을 기원하는 상량문을 쓰고 술과 떡, 돼지머리, 북어, 명주실, 한지 등을 마련해 제를 올리는 의식을 합니다. 이것이 바로 상량식입니다.
이웃과 친척, 지인들을 초대해 음식을 나누는 잔치도 펼칩니다. 건축주는 마룻대에 복을 기원하는 의미로 백지에 북어와 떡, 돈 등을 싸 묶어 놓거나, 제상에 돈을 놓았습니다. 잔치가 끝나면 일꾼들이 그 돈으로 회식을 하며 노고를 풀었습니다.
상량문은 축문입니다. 원래는 집을 짓게 된 내력이나 건축주의 생각 등을 비단이나 종이에 적어 나무에 홈을 파고 보관합니다. 점차 간략해져 종도리에 집 지은 날짜와 짧은 기원문을 직접 쓰는 형태로 바뀌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위쪽에는 ‘용(龍)’자를, 아래에는 ‘귀(龜)’자를 쓰고 가운데 상량 날짜를 적습니다. 좋은 문구를 함께 쓰기도 합니다.
홍천에서 아는 분이 집을 지으며 상량문을 써달라고 부탁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벌써 5년 전 이야기입니다. 거창한 축문이 아닌, 붓으로 몇 자 적어 올리는 약식 상량문이었습니다.
마룻대에 예전 방식 대신 한글로 ‘늘 푸른 날처럼, 늘 푸른 마음으로 좋은 집에서 잘 살라’는 뜻을 담아 ‘푸르른 날 푸른 마음’이라고 써 주었습니다. 예전처럼 시끌벅적한 상량식 잔치는 생략하고 상량문만 간소하게 올리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나마 그것이 내가 보고 체험한 마지막 상량문이었습니다.
그 후로는 주변에서 집 짓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지만, 제대로 된 상량식은 물론 상량문을 쓰는 것조차 보지 못했습니다.
아파트에 사는 요즘 사람들은 자기 손으로 집을 지을 일이 없어 상량식을 하고 싶어도 기회가 없습니다. 대부분은 이미 지어진 집을 골라서 삽니다.
상량식은 할 수 없어도 내 집 마련의 순간에 그 의미를 되새기며 자신만의 상량문을 써보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입니다. '내집 마련'이란 오랜 꿈을 이루고 새로운 삶의 터전을 이룩한 감격스러운 순간을 글로 남기는 순간이 나를 돌아보고, 함께 사는 가족들에 대해 생각하고, 내 삶을 미래를 계획하는 의미있는 시간이 될 겁니다.


강원도 산마을에 조그만 카페 ‘시골편지’를 짓고 시작하며 마음을 담아 상량문을 지었습니다. 나무판에 정성껏 써 카페 벽에 걸어두고 이따금 읽어봅니다. 시작할 때의 마음을 되새기고 시간이 흐르며 그 의미는 새롭고 더욱 깊어집니다.
직접 쓴 상량문을 소개합니다.
[상량문]
살다가 멈칫 꽃이 피고
길을 가다 선 듯 바람 부는 것이
언제 내 뜻이었던가
내 맘 아득히 비 올 때면
옆에 있는 사람도 도진 듯 그립고
늦가을 부리 무뎌진 볕에 꽃잎 지면
떠나고 보낸 사람들 하나하나 단풍 되어
가슴에 새겨지는 아픔이 언제 내 뜻이었는가
속절없는 인연에 외롭고
쉴 새 없는 가난이 등짐이던 밤 매듭마다
잠들다 깨 밤을 새우고 다시 맞는 우울한 아침도
누군가는 나를 위해 밥 짓고 옷 깁고
따뜻이 덥혀놓은 아랫목의 목메던 사랑
나를 위한 누군가의 지극한 가슴앓이에
진정 감사한 적이 있었던가
그렇게 사는 것
살다가 무엇이 되는 것도 내 뜻은 아니었지만
때로 어긋나는 인생에 분노하고 시기하고
때때때로의 거짓이 부끄러워
오십 넘어 누군가에게 감사할 집을 짓는다
꽃 피고 바람 불면 그대로
그리운 대로 사랑하는 대로 뜻대로 터를 닦고
뼈를 발라 기둥을 세우고 바람을 막고
그대 배 터지게 밥 짓고 따뜻하게 등 누이고도 남을
충분한 볕이 드는 집
배 아프게 낳고 마음 졸여 기른 아이들이
오물오물 아이를 낳아 꼼지락거리며
텃밭에서 빨간 토마토를 한 아름 따 가슴에 안고
하늘 넓은 다락방에서 잠이 들고
소문도 없이 첫눈 내리는 날
너무 오래 잊었던 벗이 젖은 편지로 돌아와
아궁이 가득 장작을 지피고
고기를 굽다 소주를 마시다 노래를 부르다
별 것도 아닌 인생 아쉽다 조롱하다
뒷산 억새처럼 늙어 갈 집
볕 잘 드는 마당가에
매화나무 하나 심어 기르다
비늘마저 하얗게 늙어지면
나무 아래 살 묻어 겨울을 나고
이듬해 이른 봄비에 깨어
키 작은 제비꽃이 되는 집
집을 짓는다
믿음 없이 산 삶의 부끄러움과
때때로의 잘못들을 마음에 새겨
오늘 집을 상량하며
머리 숙이고 손을 모아 기도한다
누가 살아도 해 뜨면 따뜻하고
낮은 윤택하고 밤은 평온하며
어느 계절도 거스르지 않는
저기 바람 흘러가는
숲이나 강 들꽃이 되어도 부끄럽지 않을
자연 그대로의 집이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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