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여행

마을길서 만난 천년 역사

시골편지 2025. 5. 3. 22:40

 

수도권과 푸른 동해를 잇는 42번 국도는 강원도의 다채로운 풍경과 숨겨진 이야기를 품고 있는 매력적인 길입니다. 굽이굽이 이어지는 길을 따라가다 보면 강원도 특유의 아름다운 자연은 물론, 산간 내륙의 소박한 마을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예상치 못한 역사의 흔적과 마주하는 특별한 경험을 하기도 합니다. 원주 교항리 석조불두(강원도 문화재자료 제124호)와 원주 평장리 마애공양보살상(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19호)도 그 중 하나입니다.
 
원주에서 42번 국도를 따라 동해 방면으로 달리다 보면, 소초라는 작고 평온한 면소재지를 만납니다.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도로변의 작은 마을입니다. 면소재지를 벗어나면 바로 완만한 언덕길이 나타납니다. 오른편에는 산업폐기물처리 회사가 자리하고 있어, 큰 트럭들이 오가는 풍경을 볼 수 있습니다.
 
이 길을 수 없이 다니는 사람들도 길 옆에 있는 '평장리 마애공양보살상'이라는 이정표를 지나칠 겁니다. 거기에 그런 유물이 있을 거란 생각을 할 수 없습니다. 폐기물 처리장 안에 문화재라는 아주 낯선 그림이기 때문입니다.
 
이정표를 따라 안으로 조금만 들어가면 공장 입구 야트막한 야산의 거대한 바위에 천년의 세월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그윽하고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는 보살상이 새겨져 있습니다.
 

"여기에 이런 것이!"

 
주변은 공장 주차장과 폐도로 등으로 다소 어수선하지만, 인적이 드물어 고요한 분위기 속에서 보살상의 신비로운 아우라를 느낄 수 있습니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마애공양보살상이 시선을 향하고 있는 건너편에 또 다른 귀한 유적이 자리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바로 돌로 조각된 부처님의 머리 부분, 석조불두입니다. 원래는 인근 언덕 위 자연 암벽에 몸체와 함께 있었는데 42번 국도 확장 공사 당시 몸체는 매몰되고 머리 부분만 다른 곳으로 옮겨지는 안타까운 사연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행히 2020년, 석조불두는 원래의 자리로 옮겨져 마애공양보살상과 마주 보는 본래의 모습을 되찾았습니다.
 

 
이 석조불두는 임진왜란 당시 왜병을 물리치기 위해 조성되었다고 전해지며, 마을의 수호신처럼 숭배받아 왔습니다.
 
1m가 넘는 웅장한 크기의 석조불두는 납작한 사각형 얼굴에 길게 뻗은 눈과 입, 넓은 코를 통해 고려 시대 불상 조각의 전형적인 특징을 보여줍니다. 특히 투박하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푸근하고 정감 있는 얼굴은, 당시 불교 조각의 소박하고 토속적인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전달합니다.
 
석조불두를 마주보고 있는 마애공양보살상은 거대한 바위에 얕은 선으로 새겨져 있는데 그 섬세하고 유려한 선의 흐름은 매우 아름답습니다.
 
오랜 풍화로 육안으로 자세한 모습을 명확히 확인하기는 어렵지만, 안내 자료를 통해 보살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오른쪽 무릎을 꿇고 왼쪽 다리를 세운 채, 두 손을 어깨 높이까지 올려 꽃 모양의 공양물을 받치고 있는 모습입니다. 머리에 쓴 화려한 관, 목 뒤로 흘러내리는 머리카락, 그리고 상의의 섬세한 주름 등은 섬세한 아름다움을 줍니다.
 

 
보살상이 새겨진 바위에는 탄흔이 남아있습니다. 6.25전쟁의 흔적이라 합니다.
 
혹시, 42번 국도를 따라 원주 소초를 지나시게 된다면, 잠시 멈춰 서서 바위에 새겨진 천년의 역사를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무심하게 지나칠 수 있는 길가에서, 시간을 거슬러 올라온 고려의 미소와 마주하는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